찰나를 모으는 사진가, 돌 수집하던 아버지…둘은 참 닮았네

입력 2024-02-01 17:27   수정 2024-02-02 02:59


수집의 기쁨과 고통을 안다. 아버지는 지독한 수집광이셨다. 요즘이야 멋있는 말로 컬렉터라고도 하지만 무언가를 모은다는 건 그것에 미친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평상적 균형감은 깨져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수집광들은 맑은 눈의 광인처럼 순수하게 집착하며 거침없이 그러모은다.

보통 시야가 넓고 깊어질수록 더 많이 보이므로 욕심도 많아진다. 그때부터 괴로워진다. 더 가질 수 없음에, 더 향유할 수 없음에 마음이 아프다. 어떻게 해서든 갖고 싶은 마음이 들면 악착같이, 소장품을 팔아서라도 모셔 온다. 이렇게 귀한 것을, 어렵사리 구한 작품을 가족들은 시큰둥해한다. ‘또야?’ 하는 표정이다.

수집이란 무엇인가. 자신에게는 보물이어도 타인에겐 기꺼이 이해받지 못하는 게 수집 같다. 너무 좋아하면 고통스러워지기도 한다. 개천절을 맞아 줄 서서 사던, 한 귀퉁이 티끌만큼의 오점도 없는 전지 우표가 내 손에 들어올 때의 쾌감. 그 손맛과 눈맛이 수집광을 키운다. 누가 누가 더하나 사랑과 집착을 실험하는 수집에 나는 지레 질렸다. 지독한 예술 애호가인 아버지 덕에 그 기쁨과 고통을 속속들이 경험했기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구본창의 항해’ 전시를 훑어보다 가만히 미소가 나왔다. 사진작가로서 기나긴 생의 항해를 보여주는 전시인데, 작가의 수집품과 아카이브도 볼 수 있다. 돌들을 수집해놓은 유리 진열장을 보고 빵 터졌다. 아버지 생각이 나서다. 남도의 해변가에서 주워온 몽돌을 평생 간직하셨는데, 돌의 무늬가 어여쁘다며 융으로 닦곤 하셨다.

구본창 작가의 사진들을 돌아보며 이 또한 생의 방대한 수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찰나에 대한 경외, 흩어지는 순간에 대한 절박, 소멸하는 삶에 대한 기록으로의 수집. 그래서 모든 사진에는 뜨겁고 고요한 시선이 담겼다. 대상은 시기에 따라 달라지고 있었지만 작가가 품었을 마음은 한결같다. 그 순간에 대한 진심과 헌사. 소중한 생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기록해두는 것이므로 작가는 아마도 전력을 다해 자신의 시선과 사유를 수집해온 것이다.

‘시간의 손’과 ‘재가 되어버린 이야기’ 시리즈 앞에서 나는 그만 뭉클해져 동행 몰래 눈물을 훔쳤다. 평생 삶의 순간들을 수집해 온 작가가 진정한 회고에 이르러 빈손을 보여주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되도록 수집하지 않는다. 물론 퍽 많이 그림을 사지만 기를 쓰고 모으는 건 아니다. 그냥 보고 누리려는 목적이다. 예술을 좋은 삶의 도구로 사용하자고 부르짖는 나를, 아버지가 보면 “떼끼! 이놈!” 하시려나. 혼나도 좋으니 아버지 손잡고 미술관에 가고 싶다. 구본창의 수집들을 보며 수다 떨고 싶다.

임지영 즐거운예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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